로마에서의 순교
당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외교인을 성전에 데리고 오는 경우 사형으로 다스렸다. 불길한 예감을 했던 바오로도 외교인을 성전에 데려왔다고 공박을 받아 수난을 겪었으나 겨우 죽음은 면하고 로마에 미결수의 몸으로 도착하여 2년간 감시가 별로 심하지 않아 미결수 생활을 하면서 집을 얻어 방문객과 만나기도 하고 선교활동까지도 할 수 있었다(사도행전 28, 17-31). 이 동안에 그는 옥중서간 (에페소서, 골로사이서, 필레몬서, 필립비서)을 집필했다.
이탈리아 로마 남문 밖 교외에 위치한 「세 분수의 성당」(Chiesa di Tre Fontane)은 사도 바오로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한 정열적 인생의 막을 내리고 참수당했던 장소다. 바오로 사도의 목을 올려놓고 칼로 쳤던 돌기둥이 보관돼 있고 사형 집행자가 목을 치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을 볼 수 있는 이곳은 바오로의 목을 벤 순간 그의 목이 세 번 튀었고 튀었던 자리마다 샘이 솟아나고 있다는 전설에서 세 분수, 즉 「뜨레 폰타네」라고 불려지고 있다. 바오로의 유해는 4세기에 이르러 사도에게 봉헌된 쌍 빠울로 풀레무레의 제단 밑에 옮겨졌고, 또한 2세기 말엽부터 바오로의 무덤이라고 전해오는 곳에는 성 바오로 대성전이 세워졌다.